[인생과 길 02]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다 — Re + Tire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다 — Re + Tire
본문: 시편 92:12–15
우리는 인생을 하나의 긴 여행에 비유하곤 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목적지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립니다. 공부하고, 직장을 얻고,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양육하며 주어진 책임을 감당합니다. 때로는 숨 가쁘게 달려오느라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돌아볼 여유조차 없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은퇴라는 인생의 새로운 길목에 서게 됩니다.
사람들은 은퇴를 흔히 인생의 끝자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에서 물러나고, 익숙한 역할을 내려놓으며, 이제는 쉬어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은퇴를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은퇴는 인생이라는 여행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떠나기 위해 잠시 멈추는 시간입니다.
1. 은퇴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준비하는 것이다
영어로 은퇴는 Retirement입니다.
저는 이 단어를 생각할 때마다 재미있는 상상을 해봅니다. Retire를 Re + Tire로 나누어 보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단어의 실제 어원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설명하는 데 참 좋은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자동차를 오래 운전하다 보면 타이어가 닳습니다. 수많은 길을 달려온 타이어에는 그동안의 여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타이어가 닳았다고 자동차의 여행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길을 안전하게 달리기 위해서는 잠시 멈추어 타이어를 교체해야 합니다.
저는 은퇴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새로운 길에 맞는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성취와 책임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면, 은퇴 이후에는 삶의 의미와 관계, 섬김과 나눔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이제는 얼마나 빨리 달려왔는가보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걸어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은퇴는 삶의 속도를 늦추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삶의 방향을 새롭게 정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2. 직장에서 은퇴할 수는 있어도 삶의 사명에서 은퇴하는 것은 아니다
은퇴를 맞이할 때 가장 크게 달라지는 것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역할입니다.
오랫동안 자신을 소개하던 직함이 사라집니다. 매일 출근하던 장소가 없어지고, 익숙했던 일정도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변화를 자유로움으로 받아들이지만,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더 이상 필요한 존재가 아닌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가치를 직함이나 성취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의 삶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시편 92편은 의인의 삶을 나무에 비유합니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시편 92:14, 개역한글)
이 말씀은 참 놀랍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생산성이 떨어지고 활동이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나이가 들어서도 열매를 맺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젊은 시절과 똑같이 일하거나 같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면 몸의 능력도 달라지고, 감당할 수 있는 일의 범위도 달라집니다. 하지만 열매의 모습이 달라질 수는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의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젊은 시절에는 직접 일하며 열매를 맺었다면, 인생의 후반기에는 다음 세대를 격려하고, 경험을 나누며, 누군가의 삶을 세워 주는 방식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직책은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고, 섬기고, 나누며 살아갈 기회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은퇴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게 살아가는 일까지 은퇴할 필요는 없습니다.
3. 새로운 타이어만큼 중요한 것은 새로운 방향이다
자동차에 새 타이어를 장착했다고 해서 좋은 여행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면 새 타이어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은퇴 이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많아졌다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준비되어 있다고 해서 삶의 목적까지 분명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은퇴를 준비하면서 재정과 건강, 주거와 생활비를 꼼꼼히 계산합니다. 물론 모두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남은 시간을 누구와 함께, 무엇을 나누며 살아갈 것인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경험과 은사를 이제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저 역시 오랜 목회와 선교의 여정을 마치고 은퇴를 맞이하면서 이러한 질문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은퇴 후에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사역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다음 세대와 나누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또 다른 모습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은퇴는 잃어버린 것만을 바라보는 시간이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길에는 새로운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길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4. 인생의 후반기는 또 다른 열매의 계절이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비유합니다.
봄에는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땀 흘려 가꾸며, 가을에는 열매를 거둡니다.
그런데 인생의 후반기를 반드시 겨울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과 지혜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또 하나의 결실의 계절이 될 수 있습니다.
시편 92편 15절은 늙어서도 열매 맺는 삶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시편 92:15, 개역한글)
열매 맺는 삶의 목적은 단순히 내가 여전히 유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이 드러나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은퇴 이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무엇이 드러나느냐일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일, 젊은 세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 오랜 경험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는 일,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도 귀한 열매가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조용히 기도하며 누군가를 응원하는 삶도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는 삶입니다.
열매는 반드시 크고 화려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아 보이는 열매라도 누군가에게 생명과 소망을 전한다면 충분히 귀한 것입니다.
5. 다시 길 위에 서다
저는 이제 새로운 타이어를 장착하고 또 다른 길을 떠나는 마음으로 인생의 후반기를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 길에는 새로운 배움이 있을 것이고, 낯선 만남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만나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길을 미리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길을 걸으며 무엇을 배우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열매를 남길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은퇴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내려놓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걸어갈 길이 남아 있고,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으며, 나누어야 할 사랑과 맺어야 할 열매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퇴를 두려워하기보다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낡은 타이어를 교체하듯 익숙한 삶의 방식과 생각을 점검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새로운 길을 향해 다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은퇴는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길을 향한 또 하나의 출발입니다.
길 위의 묵상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시편 92:14)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드는 과정만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통해 얻은 지혜와 경험을 새로운 열매로 바꾸어 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열매를 남기고 싶은가?”
짧은 기도
하나님 아버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남은 길에서도 삶의 목적을 잃지 않게 하시고, 나이가 들어서도 사랑과 섬김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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